윤완석 군 의 아버지 는 역사 공부 를 허ㅌ으로 하였읍니다. 올바로 공부 를 하였다면 왜 구한말 에 우리나라 조선 이 갈래 로 찢기다가 결국 일본 에게 먹히게 되었는 지 를 알고 자식 을 키웠을 터 인데, 그렇 지 못 하여 자식 을 한짜 의 굴레 에 묶어 놓고 말았읍니다. 잘 알아 두십시요. 문맹 을 만드는 한짜 때문 에 나라 를 잃은 것 입니다.
샛바람 님 은 제 가 그토록 이나 한짜 가 이세상 에서 더이상 쓸모 없는 글이란 것 을 말씀 드렸는 데 에도 아직 도 한짜 에서 벗어나지 못 하시는 군요.
저 는 한짜 란 것 을 '중국 사람들 이 아직 도 쓰고 있는 원시 그림글' 이라고 새깁니다. 물론 뜻글 입니다. 글 치고 말하는 사람 의 뜻 을 싣 지 않는 글 이 있읍니까? 말 이 뜻 을 표 하고져 하는 소리 임 으로 소리 를 실어 적는 글 역시 뜻글 입니다. 한짜 가 그림뜻글 이라 면 소리글 은 소리뜻글 입니다. 수많은 소리뜻글 중 에서 말 의 소리 를 가장 충실히 실어 내는 글 이 한글 임 으로, 한글 이 이 세상 에서 가장 좋은 소리뜻글 입니다. 다시 말 해서 이 세상 에서 가장 좋은 정보처리 도구 입니다. 한짜 는 소리 를 적 지 않고 뜻 을 그립니다. 한짜 는 가장 배우기 어렵고 가장 비효율적 인 그림뜻글 입니다. 온 세상 이 다 아는 사실 을 가지고 왜 한국 의 식자들 은 모르는 채 하는 지 리해 가 가 지 않습니다.
새파람 님 과 윤완석 군 은 일찌기 깨달으시고 주위 사람들 의 리해 를 흐리게 하지 않 도록 조심 해 주시면 감사 하겠읍니다.
감사 합니다.
아래 윤 군 의 글 을 분석 :
모두 대략 2000 글짜.
한글 이 대략 76%
한짜 가 대략 24%
그중 20% 가 한글 로 써 놓아 도 알쑤 있는 한짜, 안 써 도 될 한짜들,
4% 가 한글 로 써 놓아 도 알 수 없는 한짜, 버려야 될 몹쓸 글짜들.
결론: 윤 군 과 동의 하는 사람들 은 이 처럼 어리석은 사람들.
================================
┼ ▨ 옮겨온 글입니다. - 새파람(mrc421@naver.com) ┼
│ 내가 經驗한 漢字공부 - 初等 漢字敎育의 필요성
│
│
│ 尹 完 碩 (서울敎育大 國語敎育科 在學生)
│
│ 나는 初等學校 1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漢字를 배우기 시작했다. 歷史를 專攻하신 관계로 漢文에도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는 어린 내게 무척 苛酷할만큼 漢字공부를 시키셨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처음 배운 '耕'字다. 基礎가 되는 글자도 아닌 '밭갈 경'자를 왜 맨 처음에 가르치셨는지 그 깊은 뜻은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國語의 밭을 갈아 놓는다는 心情으로 내게 漢字를 가르치지 않으셨나 싶다.
│
│ 漢字 敎本을 하나 정한 후, 글자를 한 字 배우면 그것을 오려내어 벽에 붙이셨고, 때때로 벽에 붙은 글자들을 물어보셨다. 잊어버렸을 경우에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는 꽤 열심히 외웠던 것 같다.
│
│ 冊 한 권을 다 벽에 붙이고 나자, 이제는 新聞에 나온 漢字語를 붙여놓고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당시 배운 글자는 '嚴斷'엄단, '被拉'피랍 등의 初等學校 3학년 水準에서는 사뭇 어려운 단어였는데, 漢字의 뜻을 하나하나 새겨보고 文章을 살피면 뜻을 짐작(斟酌)할 수 있었다. 이로서 初等學校때 이미 新聞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고, 그것은 단지 글자를 읽는 次元을 넘어서 內容을 把握할 수 있는 段階에 이르렀으며, 敎養은 초등학생 水準을 훨씬 뛰어넘었다.
│
│ 그때부터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童話는 물론이요, 小說 種類도 즐겨 읽었고 어렵지 않게 文章을 理解할 수 있었다. 가장 熱讀했던 책은 '三國志'로 漢字套의 文章과 漢字로 된 人名, 地名, 官名 등이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이 되면서 신이 나서 몇 번이고 읽었다. 漢字實力이 단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能力에 그치지 않고 가지를 뻗어나가듯이 思考의 폭을 擴大, 深化시키며, 독서의 興味를 誘發하는 原動力이 되었던 것이다.
│
│ 初等學校 3학년 겨울방학 때는 한 동네에 사시는 아버지 친구분을 찾아가 漢文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 분은 書藝를 하시는 분이셨지만 漢文 筆法을 硏究하시는 관계로 漢文實力도 대단하셨다. 그 때 배운 교재는 '啓蒙篇', '明心寶鑑' 등이었고, 學童은 나와 누나, 선생님의 두 아들이었으며, 敎育方法은 書堂과 비슷하여, 개인별로 文章을 暗記하고 매일 試驗을 보았다. 공부는 새벽 5시에 시작하여 한 시간 동안 하였는데. 겨울 새벽의 칼날같이 차가운 바람을 맡으며 '都氏 家貧至孝라 賣炭買肉하여 無 母饌이러라∼', '尙德은∼'을 暗誦하며 걸어다니던 記憶이 떠오른다. 이것이 人性의 側面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每日의 試驗에서 壯元을 놓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후에도 내가 漢字를 꾸준히 공부하게 했던 힘이 되기도 하였다.
│
│ 사람들은 漢字實力을 單純한 敎養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숲만 알고 '廬山의 眞面目'을 모르는 말이다. 初等學校 以後에는 漢字 공부를 體系的으로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漢字를 통한 造語力과 思考體系는 中, 高等學校를 통해서도 敎科 전반에 걸쳐 대단한 힘을 發揮하였다. 특히 記憶力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는 先天的인 것보다 單語를 보면 漢字가 떠오르고, 그것이 連結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
│ 大學에 와서도 漢字는 변함 없이 도움이 되었는데, 漢字가 많이 나온 專攻書籍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며, 한글로 되어있는 漢字語를 볼 때도 쉽게 推測이 되고, 그만큼 暗記도 잘 되었다. 囊中之錐라 드러내지 않아도 學科 친구들이 나에게 漢字를 많이 안다며 冊이나 論文을 가져와서 읽어 달라고 할 때 뿌듯한 마음은 덤이었다.
│
│ 요즘은 내가 初等學校 다닐 때와는 달리, 學生과 學父母들 사이에서 漢字에 대한 關心이 대단히 높아져서 漢字能力試驗, 漢字 競試大會 등이 생겼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學校 正規 科目에도 없는 漢字를 이토록 배우고자 하는 것은 내가 經驗하였듯이 漢字實力은 그 知識 自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兒童의 思考와 人性敎育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말은 대부분 漢字語로 되어 있어 漢字를 알면 造語力, 推理力, 縮約力 신장되어 語彙, 文章을 把握하는 힘이 생기며 推論할 수도 있고, 새롭게 創造해낼 수 있는 힘도 생긴다. 知的發達에도 語彙力이 차지하는 比重은 크며, 語彙力이 없이는 知識의 調和를 꾀하지 못하고, 깊은 思考를 하지 못한다. 또한 漢字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頭腦發達에도 큰 影響을 끼치는 것이다.
│
│ 그러나 이러한 關心과 必要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정작 學校에서는 定規敎科로 漢字를 가르치지 목하고 있다. 國語를 올바로 가르치기 위함에는 물론이요, 東洋文化의 交流나 理解 등 漢字를 배워야할 많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當局, 學校, 敎師들이 모두 이를 外面하고 있는 實情이다. 그러면서도 國語의 重要性을 强調하고 冊을 많이 읽기를 要求하니 '軒馬鞭(초헌마편)'이라고나 할까?
│ 앞다리가 긴 짐승인 '浪'과 뒷다리가 긴 '狽'가 서로 힘을 합치면 능히 걸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걸을 수가 없어서 '狼狽(낭패)'가 된다. 우리 國語敎育도 한글과 漢字를 倂用하여 가르쳐야 바른 뜻을 전달할 수 있고, 言語生活의 理想을 實現할 수 있을 것인데, 漢字를 소홀히 하면 우리 言語文化의 '狼狽'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러한 言語文化의 狼狽를 막기 위하여 初等에서부터 漢字를 正規敎科로 徹底히 가르쳐야 한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