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차례 말씀 드린 바 있지만 님은 언어의 개별성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려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어나 타갈로그어 같이 음운이 적다고 해서 덜 떨어지는 언어가 아니고 태국어 같이 닿소리가 마흔 개가 넘고 홀소리도 스무 개가 넘는 언어라 해서 휼륭한 게 아닙니다.
님이 이러한 언어의 개별성과 상대성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 하는 한, 앞으로의 논의는 평행선을 그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언어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인 이상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어휘가 부족하거나 문법이 정리 안 된 언어는 덜 훌륭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의 본질하고는 다릅니다. 인간의 문화가 발달하면서 개념이 늘어나니 어휘가 늘어난 것이지만, 언어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살만 더 붙는 것일 뿐이죠. 그리고 이 살을 붙이는 데는 여러 가치들이 존재할 테니 님처럼 우리가 쓰는 외래어를 원어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님의 주장이 극단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 발음체계를 무시하고 외래어의 본래 의미를 망각한 채 무작정 원어 발음을 따라 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말을 하면서 영어 외래어를 쓰는 것과 영어로 말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우리말을 하면서 영어 외래어 발음을 똑같이 하여 단어를 섞어 쓴들 그것은 영어 문장이 아닙니다.
언어 사이에는 false friends라는 게 있습니다. 같은 말밑이거나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뜻이 다른 낱말들입니다. 같은 어원을 가진 유럽 언어들 사이에는 이런 경우가 매우 흔하고, 한자어가 많은 한중일어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님의 논리대로 한다면 유럽 언어들은 모두 영어를 기준으로 개별 언어의 어휘를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겠죠.
그리고 님은 국지적인 몇 개의 낱말 갖고 우리말의 영어 외래어가 일본어를 따라 한다고 하시는데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십시오. 가령 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직 많기는 해도 쓸 때는 버터가 맞다는 걸 다 알고 대부분 그렇게 씁니다. 저도 말할 때는 테레비라고 해도 쓸 때는 텔레비전으로 씁니다. 만약 누가 테레비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를 친일파로 규정한다면 단순 무식의 극치를 보여 주는 예라 하겠죠. 그리고 님은 언어에 여러 층위와 맥락이 있다는 걸 모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와 글로 쓸 때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죠. 우리가 말을 할 때는 속어도 쓰고 방언도 씁니다. 그런 것까지 모두 틀렸으니 언제나 표준어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잣대로 언어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님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규범은 전혀 우리말에 어울리지 않는 영어의 발음 체계를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는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모순이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의 주장에는 세계화에 따라 우리말을 영어에 맞게 다듬어야 한다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님의 그러한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은 아직 없지만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참으로 슬픈 일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