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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다듬기] '권하다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11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356) 권하다勸 2 : 의자를 권하며

.. 선생님은 아저씨에게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 《최연식-웅이의 바다》(낮은산,2005) 99쪽

‘의자(椅子)’ 같은 한자말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나, ‘걸상’이나 ‘자리’나 ‘앉을 자리’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 걸상을 내주며 말했다
│→ 걸상을 밀어 주며 말했다
│→ 걸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 걸상에 앉으라 하며 말했다
└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의자’라는 한자말과 함께, ‘권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도 제법 널리 쓰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이런 낱말은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살피지 않고 써도 되지 않느냐고, 그냥 우리 말로 뿌리내린 낱말이 아니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퍽 많은 분들은 이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책을 권한다”고 하고, “권해 주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추천하는 책”이라 말하고 “소개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내어주는 책”이나 “알려주는 책”이나 “들려주는 책”이라고는 좀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하다”처럼 말하는 분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앉으라고 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앉을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
└ …

‘우리 말로 굳었다’는 핑계를 앞세워, 수많은 나라밖 말이 토박이말 사이에 끼어듭니다. 수많은 토박이말은 ‘우리 말을 다양하게 살린다’는 핑계에 짓눌리기까지 하면서 죽어 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나라밖 말이건 토박이말이건 자기 생각만 나타내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수많은 책은 이냥저냥 흘러가는 세상 물결에 맞추어서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문득, 오늘 내가 디디고 있는 이 나라 이 삶터는 ‘세계화’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화라는 때에는 알맞춤하게 쓰는 토박이말 한 마디가 아니라, 세상 물결에 따라서 한 번 쓰고 버리면 되는 말마디면 넉넉할 텐데, 쓸데없는 데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거나 내버리고 있는 셈이겠구나 싶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고 새로운 말이 쏟아지지만, 새로운 정보는 금세 사그라들고 새로운 말은 똑같이 사라집니다. 수없이 들락거리면서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얄딱구리한 말도, 사람들은 얄딱구리하다고는 조금도 느끼지 않으면서 그냥저냥 쓰다가 1회용품 버리듯 손쉽게 버리고 또다른 1회용품을 찾듯 아무 말이나 대충대충 받아들여서 쓰고, 또 버리고, 이런 되풀이를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 ‘勸하다’ 한 마디쯤이야, ‘권하다’든 ‘勸하다’든, 또는 ‘推薦하다’든 ‘추천하다’든, 그리고 ‘紹介하다’든 ‘소개하다’든 알 게 뭐람. 따질 구석이 뭐람. 사람들 모두 대충대충 살고 있는데, 그냥 돈만 잘 벌면 좋다고 히죽히죽대는데,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며 눈물지으면 하루가 즐거웠다고 말하고 있는데,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죽어나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협정 때문에 자기 일자리는 더욱 나아진다고 하는데, 검은짓 일삼는 정치꾼이고 아니고 가리지 않고 아무한테나 표를 줄 뿐더러 아예 표를 버리기까지 하는데, 과자봉지 뒤에 적힌 제품성분조차 읽지 않고 그냥 값싼 물건이면 ‘왔다!’ 하고 여기며 사들이기만 하는데. 아이들한테 밤 열두 시가 되도록 참고서만 달달 외게 하고, 대학교 못 가면 사람이 아닌 듯 깔보고 푸대접하고 얕보고 하는데. (4339.1.3.불.처음 씀/4341.11.15.흙.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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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03) 일대의 2 : 이 일대의 돌무더기

.. “이 일대의 돌무더기를 나눠 줄 테니까 얼른 주워 담아.” .. 《싼마오/조은 옮김-사하라 이야기》(막내집게,2008) 139쪽

‘얼른’이라 말하고, ‘신속(迅速)하게’라 하지 않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 이 일대의 돌무더기를

│→ 이곳에 있는 돌무더기를
│→ 여기 있는 돌무더기를
│→ 이 둘레에 있는 돌무더기를
└ …

‘둘레’와 ‘언저리’와 ‘가까이’와 ‘옆’ 같은 낱말을 넣으면서 우리가 있는 곳과 바라보는 곳을 가리켜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낱말은 ‘주변(周邊)’과 ‘주위(周圍)’와 ‘인근(隣近)’과 ‘부근(附近)’에 밀리면서 차츰 쓰임새가 줄거나 자취를 감춥니다.

여러 가지 까닭이 있을 텐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쓰고자 하는 마음이 없거나 옅은 탓이라고 느낍니다. 영어로만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고 호들갑입니다만, 우리 말을 제대로 살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라디오 풀그림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라디오뿐 아니라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말 고운 말”쯤이라 하여 5분이나 10분쯤 아주 짤막하게 끼워넣기로 보여주는 자리는 있지만, 한 시간이나 두 시간에 걸쳐서 나오는 영화나 연속극이나 우스개나 다큐멘터리 같은 자리에서 “우리 말을 제대로 가다듬거나 추스르면서 쓰는 가운데 나오도록” 하는 일이란 참 드뭅니다. 방송국 일꾼 스스로 ‘방송용어순화자료’를 묶어내기는 하는데, 이렇게 꾸준히 묶어내어서 ‘방송을 할 때 고쳐서 써야 하는 낱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살피는 분은 얼마나 있는지요.

한쪽에서는 ‘다듬어야 할 말’을 부지런히 찾아서 책이나 자료로 묶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나란한금처럼 달립니다. 애써 자료를 묶어낸 사람들 땀방울은 해마다, 아니 자료를 묶어낸 그날부터 보람없이 사라집니다.

┌ 학교 주변 → 학교 둘레 / 학교 언저리
├ 주위를 둘러보셔요 → 옆을 둘러보셔요
├ 시청 인근 → 시청 가까이
└ 집 부근 → 집 가까이

아무래도 우리들은 그저 이대로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조금씩 우리 말을 살리고 삶을 북돋우며 글을 키우고 마음을 가꾸는 쪽이 아니라, 돈과 이름과 힘을 신나게 누리고 즐기는 쪽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내 말 한 마디가 아름다워지고, 내 삶 한 자락이 넉넉해지며, 내 글 한 줄이 맑게 빛나며, 내 마음 구석구석 사랑이 깃들기를 바라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4341.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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