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의 퇴보:교육부에서는 이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 사회에서건 초등·중등학교 교과서의 문자 표기는 그 사회 글살이(문자생활)의 본보기로 작용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을 만나면 ‘교과서대로 하라’는 말을 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는 교과서 의존도가 더욱 더 강하다. 이러한 실정에서 초등·중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거나 혼용)하면 신문·잡지를 비롯하여 대중 출판물이 교과서를 따라갈 것이 뻔하다. 훈민정음 사용 이후 550년 만에 한국어 공동체의 글살이(문자생활)가 겨우 제자리를 잡았는데, 여기에 한자를 병기(하거나 혼용)하는 것은 역사를 550년 전으로 되돌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처사이다.
2) 언어와 문자의 혼동:언어학의 초보를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듯이, 문자는 언어를 적는 방편이지, 언어는 문자의 종속체가 아니다. 한국어 낱말 “김치, 비빔밥, 갈비, 아리랑, 태권도, 서울” 등등이 세계 여러 언어권이 들어가 있지만, 모두 자기의 문자로 기록하지 한국어라고 해서 한글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한글로 어떻게 쓰는지 모르지 만 그런 낱말을 곧잘 말한다. 대다수 언어권에서는 한자어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어 공동체에서는 왜 꼭 한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일상 대화에서는 많은 한자어를 사용하는데 어려움 없이 소통하지 않는가? 이 분명한 사실을 보고도 ‘한자의 일상화’ 주장을 수십년 계속하는 데에는 다른 속셈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3) 인성 교육의 왜곡:교육부의 자료(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요약)에서는 한자 교육을 인성 교육의 일환으로 제시하였고, 평소에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이 없지 않으나, 이는 매우 허무맹랑한 논리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한족(중국인)은 다 인성이 훌륭한가. ‘義’를 알아야 의로운 사람이 되고 ‘奉仕’를 알아야 봉사를 잘하는가. 한자를 아예 모르는 대다수 인간에게는 아예 인성이란 것이 없는가?
4) 공동체 통합의 장애물:한자 사용이 보편화하면 한자를 아는 계층과 모르는 계층으로 나누어져,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정보 공유가 순조롭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 통합에 여러 가지 장애를 유발할 것이다.
5) 독서 능률의 저하:두 가지 이상의 문자로 표기된 글을 읽을 경우의 독서 속도는 한 가지 문자로 표기된 글을 읽을 때에 비하여 매우 느려진다. 한글만으로 표기된 글이 속독에 훨씬 유리하다.
6)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저해:오늘날 한국이 누리는 정보·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문자 체계가 과학적인 한글에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 이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자를 함께 2가지 문자를 사용하면,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문자 처리 속도가 느려짐은 물론이고, 오늘날과 같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계속해 나가기 어려워질 것이다. 아예 한글을 버린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7) 교과 교육의 비정상화 초래:교과 교육이 제각각 교과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한자 교육에만 매몰되고 말 것이다. 한자에 무슨 큰 조화가 있는 줄 알고 교실마다 한자에만 얽매이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공기의 주성분인 산소를 이해하는 데에 ‘酸素’가 무슨 도움이 될까? 수학에서 분수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分數’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8) 교육 태세의 미비:대다수 현장 교사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다. 제대로 가르치려면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9) 사교육 부담 배가:지금 한자를 제대로 가르칠 교사도 많지 않은 여건에서 한자 교육이 공식화하면 그 대부분은 사교육기관이 좌지우지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공교육에 대한 외면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사교육비의 과중한 부담, 공교육에 대한 신뢰 상실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문제 아닌가.
10) 학습 부담의 과중:한국 어린이의 ‘삶의 만족도’는 OECD국가 중에서 꼴찌라는 보건복지부의 발표가 있었다(2014-11-04 보도). 그 중에는 한국 아동의 67.6%가 방과 후에 학습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여가 활동(친구들과 놀기, 운동 등) 참여율은 매우 낮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보고가 아니더라도 한국 학생들이 과중한 학습 부담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매일 보고 있는 사실이다. 초등학교에까지 한자 교육을 도입하면 몰지각한 어른들의 욕심에 아이들의 허리는 더욱 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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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자?한문 교육에 대한 제언
1) 한문 교육의 충실화:현재 중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문’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기 바란다. 40년 동안 한문 교육을 해 왔음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한문’ 교육을 충실히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 기회에 크게 반성하고 효과적인 한문 교육 방안을 마련하라. 한자 교육이 중요하다고 초등·중등학교 교과서를 비롯한 대중 출판물에 한자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처사이다. 영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모든 국민이 영어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어서 되겠는가.
2) 한자 교육 목표의 재점검:한자 교육해야 하겠다면 그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자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노리는 바가 다르다. ① 우리의 한문 고전을 읽는 데에 필요하다는 의견, ② 한국어 낱말을 이해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 ③ 인성 교육에 필요하다는 의견, ④ 지능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 ⑤ 중국이나 일본과의 교류에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상존하고, 그냥 장사 속으로 자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지 않은 듯하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교육부에서 노리는 목표인지 분명하지 않다. 우리가 보기에는 ①만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온 국민을 한문 전문가로 키울 필요도 없고, 한자 몇 안다고 해서 한문 해독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는 한국 한자와는 매우 다르다.
-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운동 실행위원회
발표한 성명서들
교육부는 교과서 한자 병기 확대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
교육부는 한자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교육과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
말의 의미는 소리(청각영상)에서 오는 것이지 글자(시각영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한자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뜻글자인 한자를 버리고 소리글자인 간체자를 쓰고 있는 현실에서 한글이라는 가장 완벽한 소리글자를 가진 우리가 오히려 한자를 힘들여 가르치고 무리하게 함께 쓰겠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장 기구한 문자생활을 하는 일본을 제외하고,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 두 가지 이상의 글자를 섞어 쓰는 나라가 있는가.
오늘날 세계의 언어가 되다시피 한 영어도 대부분의 문화어가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지만 어원을 밝히겠다고 그 문자를 병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교육부는 건국 이래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온 국어교육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학교?학생’이면 되지, ‘학교學校?학생學生’이라는 교육이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교육부는 사실을 바로 보고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한글학회는 568돌 한글날을 맞아 일만 회원의 이름으로 강력히 촉구한다.
2014년 9월 24일, 교육부는 2018년부터 적용할 새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을 발표하면서 한자 교육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초·중·고 별 적정 한자 수를 명시하고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초등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 400~500자를 병기하겠다고 한다. 우리 한글문화연대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방침이 한자 사교육을 부추기고 어린 학생들의 학습 부담만 늘릴 뿐 새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나 학습 부담 줄이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방침을 즉각 취소하라.
1970년부터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없애고 교육을 진행한 지 45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그렇게 공부한 지금의 성인 세대가 낱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다. 한자 교육은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중학교부터 시행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45년 동안 입증되었다.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게 되면 교사는 한자를 가르쳐야 하고 평가할 것이기 때문에 낱말의 총체적인 개념을 가르칠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교육의 퇴보다. 또한 교육을 경쟁 무대로 여기는 사회 풍조가 강하기 때문에 유치원부터 한자 선행 학습이 불붙고 한자 사교육이 강화될 것이 뻔하다.
낱말의 뜻은 글자에서 오는 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온다. 실제 생활과 대화, 책읽기, 체험을 통해 총체적으로 낱말의 뜻을 풍부하게 익혀야 낱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자를 꼭 병기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태도는 낱말 교육의 방법을 한자 풀이로 떨어뜨릴 위험이 높다.
우리는 많은 양의 지식을 가르치려는 교육 방침이 시대에 뒤처진 철학에서 나온다고 본다. 창의력과 원리 이해를 중시하는 교육을 지향한다면 교육과정의 내용을 더 줄이고 수업과 평가 방법을 혁신해야 한다. 교과서 한자 병기 방침은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떨어뜨릴 뿐이므로 당장 취소해야 한다.
교육부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문?이과 통합형 교육 정책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세부 항목은 이러한 미래 지향과는 아주 거리가 먼 국어 퇴보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인문?사회적 소양 함양과 인성 교육 강화를 위해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한자 병기는 교육으로 보나 언어 상식으로 보나 옳지 않은 일이기에 우리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반대 운동을 전개한다.
첫째, 한자 병기는 여러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애쓰고 있는 공공언어의 쉬운 언어 쓰기를 거스르는 것이다. 교과서는 공공언어의 표준 역할을 하는 일종의 규범서이다. 한자를 괄호 속에 넣는다 하더라도 병기 자체가 두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낱말의 뜻은 문맥이나 맥락을 통해 파악하는 것인데, 마치 한자를 통해 파악하는 것인 양 잘못된 언어관으로 의사소통 교육을 망치게 한다. 근본적으로 모든 어휘는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치매’의 뜻을 우리는 한자 없이 잘 이해하고 사용한다. ‘癡?’라는 한자는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인데, ‘치매’가 어리석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셋째, 전 세계 전문가들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극찬하는 이 시기에 이중 문자 체계로 가면서 또 다시 한자 논쟁을 벌이게 된 것은 나라의 비극이다.
넷째, 초등 교과서는 한자 학습서가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좀 더 쉽게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때로는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교재이다. 우리나라는 고급 생활 독해력을 측정하는 국제 경쟁력 평가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다양한 책을 제대로 읽는 독서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한자를 병기하면 초등학생들은 더더욱 책읽기를 싫어할 것이다.
다섯째, 한자 병기론자들은 우리말 속에 녹아 든 한자어를 오히려 배격하고 있다. 언어문화와 언어공동체를 풍부하게 해 온 한자어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녹아든 한자어는 당연히 우리말이며 과학적인 쉬운 한글로 표기하여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부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쉬운 문자를 만든 세종 정신을 거스르는 반역사적이며 반교육적이며 반인간적인 정책을 중단하고 사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