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말 손질 200 : 시작과 시작
..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아이들과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김현수-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4) 20쪽
이 보기글은 퍽 아슬아슬합니다. 생각없는 이가 이 글을 썼다면 “우리의 이야기의 시작은”처럼 첫머리를 열고, “아이들과의 만남에서부터”로 가운데를 꾸미며, “시작하는 것입니다”처럼 마무리를 지었으리라 봅니다.
┌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
│→ 우리 이야기는
│→ 우리 이야기 첫머리는
└ …
그래도 “우리의 이야기”라 안 하고 “우리 이야기”라 적으니 반갑습니다. 다만, 첫머리부터 ‘始作’이라는 말에 갇혀서 아쉽습니다.
┌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 만나는 데서부터 비롯합니다
│→ 만나는 데서부터 펼쳐집니다
│→ 만나는 데서부터입니다
└ …
더군다나, 글 끝머리에 또다시 ‘始作’이 나타납니다. “시작은 시작합니다”처럼 적은 셈입니다. 글쎄, ‘첫머리’가 어떠했는가를 여러모로 힘주어 밝히고 싶었기에 이와 같이 글을 썼다고 할 텐데, 아무리 힘주어 밝히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글을 이렇게 써야 했을까 싶습니다. 좀더 생각해 보고, 좀더 헤아려 보고, 좀더 살펴보고 쓸 수 없었으랴 싶어 아쉽습니다.
┌ 우리 이야기는 아이들과 만나는 데에서 비롯합니다
├ 우리 이야기는 아이들과 만나면서 펼쳐집니다
├ 우리 이야기는 아이들과 만나는 데부터입니다
└ …
우리들은 우리 말 ‘비롯’을 잃거나 버리면서 한자말 ‘始作’을 받아들여서 온갖 곳에 두루 씁니다. 생각해 보면, 온갖 곳에 두루 쓸 만한 값이 있어서 ‘비롯’은 버리고 ‘始作’을 쓰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첫머리’와 ‘처음’과 ‘첫끈’과 같은 낱말이 있으나, 이러한 토박이 낱말로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가꾸려는 마음도 안 키우는지 모릅니다.
처음은 엽니다. 첫머리도 엽니다. 첫끈은 당깁니다.
┌ 우리는 처음에 만나기부터 했습니다
├ 우리는 처음에 그저 만났습니다
├ 우리는 맨 처음에 물끄러미 만났습니다
├ 우리는 맨 처음에 생각없이 만났습니다
└ …
처음을 알뜰히 열면서 속살을 알뜰히 가꾸고 마무리도 알뜰히 여밀 수 있습니다. 첫머리는 알뜰히 열지 못했으나 속살부터 알뜰히 가꾸는 가운데 마무리도 알뜰히 여밀 수 있습니다. 첫끈도 알뜰히 당기지 못했고 속살도 알뜰히 꾸리지 못했지만 마무리는 알뜰히 여밀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 글 한 줄, 그리고 삶 한 자락입니다. 차근차근 북돋우고 돌보면서 여밀 수 있지만, 차근차근 북돋우지도 못하고 돌보지도 못하면서 어영부영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만남 하나를 사랑스레 껴안으면서 빛과 소금이라는 보람을 얻을 수 있는 한편, 만남 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내팽개치면서 아무런 보람 하나 못 얻을 수 있습니다. (4341.11.3.달.ㅎㄲㅅㄱ)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93) 자네의 1 : 자네의 가슴
.. 자네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그를 자네의 가슴에 품고,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그를 전하게 ..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원충연 옮김-숨어 있는 예수》(달팽이,2008) 24쪽
“그를 전(傳)하게”는 “그를 알리게”나 “그를 이야기하게”나 “그를 보여주게”나 “그를 말하게”나 “그를 품게 하게”로 다듬어 줍니다.
┌ 자네의 가슴에 품고 (x)
└ 자네 가슴에 품고 (o)
보기글을 읽으면서 느끼는데, 붙여도 그만 안 붙여도 그만이라고 보면서 토씨 ‘-의’를 붙이게 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붙인다고 하여 그다지 잘못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한 번 두 번 쓰는 사이 차츰차츰 익숙해지고 입에 붙어서, 엉뚱한 데에 자꾸만 쓰게 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붙일 까닭이 없던 자리이지만, 붙인다고 하여 썩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여기니, 이 자리도 붙이고 저 자리도 붙이면서 스스로 자기 말투를 잊거나 잃지 않느냐 싶습니다.
┌ 자네 아이 / 자네 아버지 / 자네 집 / 자네 책 (o)
└ 자네의 아이 / 자네의 아버지 / 자네의 집 / 자네의 책 (x)
한두 번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하여도, 선선히 뒤돌아서서 나올 줄 안다면 버릇으로 자리잡지 않습니다. 몇 번 엉뚱한 길로 빠졌다고 하여도, 귀찮아 하지 않으면서 돌아나와서 다른 알맞는 길을 찾으려고 한다면 버릇으로 굳어지지 않습니다.
잘못 든 길을 돌아나오지 않으니, 엉뚱한 길로 빠진 뒤에 그냥 밀어붙이니, 자꾸만 잘못과 엉뚱함이 깊어집니다. 버릇을 넘어 삶으로 터내립니다. 뿌리내립니다. 기둥이 단단히 박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을 바라볼 때 어떤 치우친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마음그릇을 잘 여미어야 하듯,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잘못이나 엉뚱함이 깃들지 않도록 생각그릇을 잘 다독여야 합니다. 마음그릇이 가볍거나 생각그릇이 허술할 때에는, 갖가지 얄궂은 티끌과 짓궂은 먼지가 찾아들어서 쌓입니다. 더께가 됩니다. (4341.11.3.달.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