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 지식인과 글짓기 강사!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머리 속에
지식을 많이 담아두었지만
논술을 제대로 못해서
마치
논술을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써놓은 것과 같다고 봅니다.
나는
1995년도부터 인터넷을 하면서
인터넷 게시판과
교양서적에 나온 여러 글을 보고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자신의 머리 속에
지식을 많이 담아두고 있으나
그 많은 지식을 활용해서
글로 표현하는 솜씨가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의 솜씨와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인터넷 게시판과
교양서적에 나온 여러 글을 보면
그 글을 써놓은 지식인들은
어떤 토막지식을 자랑하듯이 많이 늘어놓았으나
그 토막지식이
어떤 틀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
마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다라는 말처럼
토막지식(구슬)을 꿰어서
어떤 틀(보배)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
글내용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게 글을 써놓았다는 느낌입니다.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글을 쓰면서
나는 무슨 지식을 알고 있다고
골목대장처럼 자랑만을 하려고 하고
그 자랑하는 여러 지식을 잘 엮어서
자신의 뜻을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려는 마음은 없는 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지식인들이
글을 잘 쓰지 못해서
자신의 글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글짓기강사가
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몇몇 논술수험생들이
논술첨삭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글을 좀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은
글짓기강사가
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증거라고 보는데
이에 대하여
내가
이 글에 이어서
덧글로 달아놓은
‘당나귀가 알고 있는 논술이론!!’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글짓기 강사가
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내가
글을 쓰는 솜씨를
100점이라고 보면
글짓기 강사는 45-55점이라고 봅니다.
내가
현재
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칠 능력은 없지만
내가
무슨 일로
우리 나라에서
수학을 가장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서
내가
수학을 가르치는 솜씨가
100점이라고 해도
수학강사들 사이에서
수학을 95-99점대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글을 잘 쓰는 솜씨를
100점이라고 보면
글짓기(논술)강사들 사이에서
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95-99점대는 거의 없고
평균적으로 45-55점대라고 봅니다.
글짓기를 잘 하려면
시나 수필이나
논술이나 소설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글로
모범시나 모범수필이나
모범논술이나 모범소설을 두 세개를 외워서
활용하고 응용을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데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그냥 자신의 머리 속에
지식조각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만을 자랑하려고 하고
모범논술이나 모범수필을 외워서
글을 잘 쓰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은
머리 속에 담아둔 지식을 활용해서
글을 잘 써놓는 사람이 참다운 지식인이지
글을 중학교 1,2학년생처럼 써놓으면서
머리 속에
지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고
우쭐대서 자랑만을 하는 사람은
어릿광대 지식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지식인들이
글을 제대로 잘 써놓고
글짓기 강사가
글짓기를 제대로 가르치면
우리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을
하루아침에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맺고 하는데
현실에서
지식인들은
글을 잘 쓰려고 하지 않고
영어단어와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고
어릿광대처럼 자랑을 하고 있고
교육부에서는 영어타령을 하고
사교육에서는 한자타령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봅니다
* 두 편의 모범논술을 덧글 둘에 달아놓았으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2008. 11. 13.
덧글 하나:
당나귀가 알고 있는 논술이론!!
무엇을 아는 것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고 하듯이
논술이론을 아는 것과
논술을 논술이론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다.
논술이론을 알고 있으면
논술이론강의는 할 수 있지만
논술을
논술이론대로 할 수 없으면
논술첨삭강의를 할 수 없게 된다.
인터넷에서
아래와 같이
“첨삭 안해주는 논술 강의가 많다고 하더군요”라는 말과
“논술학원을 다녀도 별 얻은 게 없다.”라는 말을 보았는데
이 두 말은
논술강사가
논술이론은 알고 있지만
논술을 논술이론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라고 봅니다.
첨삭 안해주는 로스쿨 논술 강의??
Helmholtz(helm*****) 조회 19 답변 2 2008-06-24 17:36
다음에서
첨삭 안해주는 논술 강의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무엇하러 논술 강의를 하는 걸까요?
정보만 얻고, 뭘 쓸지 전달만 받을 거라면 추천도서 몇 권 읽어보면 될텐데요.
첨삭을 제대로 받아야
제가 쓴 글이 정말로 좋은 글, 효과 있는 답안지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텐데.....
로스쿨논술 강의 중에서 첨삭까지 최선을 다하는 강의 좀 추천바랍니다.
vlwldnr 2007.01.03 09:05
네이버
답변 3| 조회 1,124
지금 예비 고 1인데요
작년겨울방학에 등떠밀려 논술학원을 갔습니다
근데 그때 재미가없었던탓인지...맨날 졸고 오고 막 그랬는데요
한 2달? 했는데도 별 얻은게 없더라구요
근데어머니가또논술학원보내려하네요
전가기싫은데...
논술학원에 가지않고도 논술 공부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다면 구체적으로 부탁드립니다...
이제 한걸음... (IMIN 18034) ::
논술학원 다녀도 별로 도움은 안되는듯한... :: 2006/12/22 16:46
일단 배경지식 강의는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이므로...
솔직히 남은 기간 내 열라 배경지식 쌓아서
하바마스가 어쩌고 저쩌고 인용할 자신은 없구요...ㅎ
가장 중요한 것은 첨삭인데...
제가 논제 이탈 밥 먹듯이하고 말도 안되는 근거 갔다붙이는 것은 저도 인정을 하는데...
첨삭 할 때 내 논리가 이러저러해서 잘못되었다... 니 논리가 성립하려면 이런 근거가 필요하다 이런식의 설명이 아닌 문제 뒤에 나와있는 예시문을 기준으로 설명을 하드라구요...
이런게 학원용 논술인가?;;;(가져온 곳: http://www.orbi7.com/)
탈무드에서
“학자들 가운데는 당나귀를 닮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저 책을 운반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볼 수 있는데
현재
논술강사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나귀를 닮아서
논술이론강의는 할 수 있지만
논술첨삭강의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둘 :
두 편의 모범논술을 살펴보기!
글쓴이는
논술을 잘 하려면
세 다섯 개의 모범논술을 외워서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으면
논술을 잘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아래와 같이
두 편의 논술을 옮겨놓고자 하니
잘 외워서 논술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편의 모범논술은
글쓴이가 직접 쓴 것이 아니고
대입논술 수험생이 써놓은 글인데
대입논술수험생이 써놓은 글을
글쓴이가 보는 잣대로 보면
틀림없는 모범논술이라고 보기에 옮겨놓는 것입니다.
논술연습을
백번을 하는 것보다
모범논술을
몇 개를 외우는 것이 낫고
모범논술을 읽고
논술연습을
열 번을 하는 것보다
논술첨삭을
한 두 번을 받는 것이 낫습니다.
1. 개미 (수험생이 예전에 논명대에 올린 것임)
2.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 2000년에 어떤 책에서 본 것임)
1. 개미
영화 ‘개미’에는 하나하나의 존재는 보잘것없지만 떼로 뭉치면 어떤 적이라도 거뜬히 물리치는 거대한 개미군단의 얘기가 나온다. 개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천적으로 정해진 각자의 임무를 당연시하며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범한 한 일개미가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나아가 그 개미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집단에 반항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위기에 부딪힌다.
이 개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것과 작은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제시문 (1)은 큰 것의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큰 조직은 개미집단 내에 개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개인적 욕구를 묵살한다. 따라서 큰 조직에 속한 개인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인간의 수단화 현상은 개인에게 소외감과 무력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3)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인 ‘소집단’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큰 조직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관련되면서도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힘들다. 큰 조직으로 인한 개인의 정신적 혼란은 이러한 특성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대면접촉이 가능하며 우리가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 소집단의 등장이 필요하다. 또한 소집단은 거대조직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에 다양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4)에서는 큰 것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큰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지혜와 시간의 경우처럼 크면 클수록 좋은 것들도 있다.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여태까지의 논쟁과는 달리 (2)에서는 아예 큰 것과 작은 것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크기의 구분은 상대적인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여러 전자제품의 크기는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기능은 갈수록 극대화되고 있다. 따라서 대상을 크기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크기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해서 우리가 큰 것과 작은 것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엔 우리의 삶을 구속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체는 알 수 없는 큰 집단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에 속하는 소집단이나 우리 개인 등 ‘작은 것’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즉, (2)의 주장은 큰 것과 작은 것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1), (3), (4)와 같이 둘 사이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파악하는 것도 옳지 않다. 우리의 신체라는 큰 단위를 구성하는 세포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한 쪽이 존재해야 비로소 다른 쪽도 존재할 수 있다. 위의 개미의 경우에도 집단을 벗어남에 따라 집단 내에서 생활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위험들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개미의 일탈이 지속된다면 전체 개미집단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큰 것과 작은 것은 어느 한 쪽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크기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작은 것과 큰 것은 서로 보완해주면서 오순도순 서로 마주보며 정답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3.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우수상)
○○고 최대혁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
피타고라스가 직각 삼각형이 밑면의 제곱과 높이의 제곱의 합은 빗면의 제곱과 같다는 그의 정리를 발견했을 때 만약 빗면이 2일 경우에는 밑면과 높이는 무엇이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당시 수학계의 권위자였던 피타고라스에게 그러한 의문은 피타고라스의 권위를 실추시킬 수 있는 문제였으며 따라서 피타고라스는 그러한 의문은 제기하는 제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여 그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진리를 왜곡하려 했던 것이다.
제시문에 제시된 상황도 이러한 권위에 의존한 진리의 왜곡이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주인공 비비도는 바로 그러한 현실을 문제삼고 있으며 그 속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러한 모순된 현실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것들은 관계없이 이단이라 규정하여 자신들의 힘을 빌어 그러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춘 이단자들을 폭력과 억압이라는 강제적 수단으로 규제하는 사제들과 그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보존을 위해 쉽게 생각을 바꾸어 그들에게 장단을 맞추는 백성들을 비비도는 모두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인 태도는 오늘의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한 몸 세우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현대인들 그들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것에 반하면 그른 것이라는 규정할 뿐이다.
건설공사의 현장에서 감사원이 부실을 발견하고서도 권력과 연관된 지배층이 힘으로 그것을 무마하려하고 또 자신의 직업을 잃지 않기 위해 쉽게 그것에 동조하는 감사원도 현대 사회에서 힘의 의해 진리를 왜곡하는 한 사례라 볼 수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보수성과 무사안일주의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관료제 사회에서 더욱 흔한 현상이다.
이처럼 위선의 모습에 장단을 맞추고 그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기반유지를 위해 그것을 숨기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지배층의 개방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진리를 왜곡하는 일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사회를 퇴보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권력구조의 틀에서 벗어나 더 나은 이론이나 확실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창의력을 낳게 할 수 있는 기본자세가 될 것이다. 이러한 개방자세는 학문하는 사람 그리고 정치가들에게 더욱 필요할 것이며 자신보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힘에 의해 자신의 의견을 쉽게 변경한다면 우리 사회는 힘에 의한 억지가 만연할 것이며 진리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에 대항하여 그 힘에도 굴하지 않고 지동설을 진리로 탄생시킨 갈릴레이의 자세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현대는 아직도 비비도가 살고 있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과 권력 또는 돈에 의해 쉽게 진리가 왜곡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진리라면 끝까지 그것을 관철할 수 있는 주체의식을 가져야 하며 또한 옳지 않은 일이라면 진리에 기꺼이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즉, 부끄럽지 않은 삶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삶만이 오늘날 힘에 의한 진리왜곡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가져온 곳 : 온고을 글터, 전주시립도서관, 2000년, 66~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