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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니라 누르하치가 창성조적서 비 를 세운이유.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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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니라 누르하치가 창성조적서 비 를 세운이유.


읽는이 (독자) 께서 청나라 누루하치의 비석 이라며 글쓴이 카페에 올린 사진과 거기에 써진 글자를 해독해 달라은 요청이 있어 검토해 본 결과 이는 지금 중국 섬서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조적서 비(創聖鳥跡書碑) 와 같았다.



그렇다면 발해(대진국)가 망하고 만주 야인이 되었으며 애각시라(愛覺新羅) 라는 성씨를 쓴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 후예가 그 만주족과 세운 금 > 후금 > 청 의 누르하치가 왜? 우리 조상의 금문과 신지녹도문을 갑골문으로 때를 묻혀 한자를 만들어서 중국 성인 소리까지 듣는 창힐(創詰)의 창성조적서 비(創聖鳥跡書碑)와 똑 같은 글자를 새긴 비석을 세워 놓았을까?









보다시피 위 누르하치 비석 글자와 아래 창성 조적서 글자는 똑같다.

글쓴이가 새로 출판될 [진본 천부경]이 하나 둘 셋 ...열 이라는 책을 내려고 우선 카페에 올려 놓았더니 반논자들은 그때위 글자는 있지도 않았고 아이들 낙서라 하지만 아래 지금 죽국 섬서성 백수현에 똑같은 글자로 된 창성조적서 비는 중국의 국보다.







지금 중국 섬서성 백수현에 있어서 우리가 항상 볼수 있는 이 창성 조적서 비문은 중국인들이 지기네 한자를 만들것으로 알고 창힐(創詰)을 성인 칭호 까지 붙여 창성(創聖)이라 하고 그의 비도 중국 국보로 여기고 있으나 글쓴이가 해독해 본 결과는 환숫(桓雄)이 밝달나라(첫 조선)을 세우는것을 보고 자기네 고향 중국으로 돌아가 그 과정을 적은 하나의 견문록이므로 우리의 국보는 될 망정 중국의 국보는 아니다.

즉 창힐은 환숫의 신하 신지밑에서 6 년간이나 글자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글이 환단고기에도 있는데 이 기간에 환숫께서 밝달임금의 밝달국(앗선, 朝鮮)을 세우는 과정을 보고 적은 견문록으로 보인다.



아래 신지녹도문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열 이나 평양 법수교 아래에 있었다는 기천문 (祈天文), 성 예찬서 그리고 영변지에 기록된 모든 신지녹도문은 모두 같은 하늘에 고 하는 글자는 글자다.

이 글자들은 모두 그 뜻은 열 이나 글자수는 16자이다. 따라서 글자가 처음 만들어 질 당시 사람들은 신께 고하는 글자는 순진하게도 16자가 더 되거나 모자라면 않되게는줄 알았던 모양인데 단 위 창힐조적서 비는 신을 위한 글자가 아니니 12자가 더 추가 되었다.(실은 같은 글자가 중복 되었음으로 11 자)



一始無始一 로 시작해서 一終無終一 로 끝나는 최치원의 81자는 신지녹도문이 써 진지 4 천년후, 우리 글자 가림토를 다 죽이고 한자에 미처돌아 숲속에 버려졌던 비석을 보고 새로 쓴(更復作帖) 시첩인데 당시 우리글자 가림토 등을 다 죽였으니 할수 없이 한자로 쓰되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 의 뜻이 하나 둘 셋 ...열 이니 한자로 쓸 수 없어 당시 유행하던 절름바리 문법인 이두 一 二 三 ...十이 다 들어가게 쓴 것인데 그 신지녹도문 하나 둘 셋 ...열이 써지던 당시는 어떤 글자고 없어서 입으로 전한 글 (ㅁ傳之書)이지만 하느님이 환웅께 내리신 말씀 하나 둘 셋 ...열도 당시는 숫자가 아니라 새 민족이 살아갈 교훈이라는 사실과 이것이 숫자가 된것은 대략 천년 후 인데 이 증거는 금문에서도 나타나지만 대략 천년후 갑골문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一始無始一 로 시작해서 一終無終一 로 끝나는 최치원의 81자를 지금 이두로 풀지않고 한자 뜻으로 푼다면 백 사람이 풀어도 말이 각각 달라지고 이상한 도표나 음양오행설로 풀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데 이두로 써 저 있으니 이두로 푼다면 쉽게 술 술리고 그 뜻은 하나 둘 셋 ...열 이다.



하나 둘 셋 ...열 이라는 [진본 천부경] 신지녹도문자.







이 글자들은 같은데 이름은 다르다.

신지는 사슴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음으로 신지녹도문(神誌鹿圖文)이라 하는데 창힐은 새 발자국 같으니 조적서(鳥跡書)라 한다. 그렇다면 어느것이 맞는 말인가?



사실 이 글자들은 창힐의 말 처럼 새 발자국 같으니 조적서라고 하는게 맞는다.

그렇다면 창힐의 말이 더 옳을것 같으나 신지의 녹도문이라는 것으로 보아 신지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는 그 전설같은 말이 실화임이 즘명된다.



여기서 창성 조적서 비 해독은 신지녹도문 [ 진본 천부경] '하나, 둘, 셋... 열' 16 자와 거기에 창힐이 추가한 12자 (실은 11) 자 합 28자를 일일히 그 이유를 설명 하려면 상당한 지면을 차지 하니 이는 신간될 책에서 보면 될 것이고 여기서는 큰 뜻만 말 한다.



이 해독 방법이 먼저 해독했던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이나 평양 법수고 아래에 있었다는 기천문과 해독하는 방법이 같아야지 각기 다르면 글쓴이가 지금껏 해독했다는 신지녹도문 해독이 모두 잘못 되었으며 아래 해독하는 창성 조적서비 해독도 잘못 되었을 것이다.

또 이 해독문이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두 풀이와 같아야 한다. 즉 김부식은 사대 사상이나 가진자 이므로 삼국사기는 믿을 것이 못된다는 말은 그 삼국시기에 써지 이두를 풀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 삼국시기의 功木 三 七 密 南 등의 이두를 풀어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은 틀림없이 환웅과 웅녀 단군과 조선을 말 했지만 다만 그 적는 사관이 우리 글자가 없으니 절름발이 이두로 적었을 뿐이고 김부식은 그래로 적었을 뿐인데 이 이두를 현재 남북한 학자들이 [진본천부경]이 하나 둘 셋 ...열 이라는 것을 모르니 아무도 풀지 못했을 뿐이다.



창성 조적서 비문 큰 뜻 해독 내용



비는(기도하는, 바라는)

개울과(여음, 겨집)

비는(기도하는, 바라는)

뱀(男根, 사내)를

땅 위에

세우니

얼루는도다

빛을 향하여

둘이

열고 나아가

씨를 심고

둘이서 비니

빛과

땅과

얼루어

아기가 나오네

열고 나가

어미 되니

자식을 낳고

씻기어

터에 세우고

곡식을

갈무리 하여

달아매니

빛 받는

밝달(배달)에

집(나라)을

세우는도다

이상으로 보아 이 창성조적서 내용은 환숫께서 밝달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지켜보고 쓴 견문록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신지녹도문이 중국인들 말 처럼 창힐이 한자 만드는 과정을 새겨 놓은것으로 이해 했다면 청나라 누루하치가 그 글자를 새겨 놓았을 리가 만무하고 우리 환웅이 우리의 시원인 단군의 밝달나라(앗선, 朝鮮 )을 세우는 과정을 보고 세운것으로 보니 청나라 누라하치도 우리 민족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기 할것은 이 창성조적서비는 당시 환숫이 밝달나라를 세우는 과정과 환숫이 같이 왔던 하늘 백성(바이칼호 부근 부라이트) 대략 3 천명과 곰족 이 혼혈하는 과정을 보고 축제를 벌인 해를 기념하기 위해 적은 [코뿔소 술 두르미] 의 내용과, 또 응국묘지에서 출토된 도자기의 내용과 거의 흡사 하니 단군 신화가 단군 실화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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