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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자방고전(字倣古箋)이라는 전(篆)자의 뜻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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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자방고전(字倣古箋)이라는 전(篆)자의 뜻



우선 세종이 모방했다는 옛 조상의 글자, 자방고전(字倣古箋)의 전(篆) 자의 뜻을 알아본다. 전 자는 도장 새길 때나 쓰는 꼬불꼬불하다는 글자로 알고 있으나 그 뜻은 다르다.

1010. 한글날 KBS에서 방연한 것을 캡춰.

도장 새길 때 전서






그렇다면 세종이 자방고전(字倣古篆) 이라 하였고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정인지는 아예 그 글자 모양도, 상형이자방고전(象形而字倣古篆) 이라 했으니 이는 우리 조상의 글자를 모방 했다는 말이다. 즉 고인(古人)아란 절대 남의 조상에게는 쓰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의 글자란 신지혁덕이 환숫(桓雄)의 명을 받고 만든 하느님 말씀 [진본천부경]이 있으나 이는 천제 때나 쓰는 신의 글자였기 때문에 다시 인간의 글자를 만드는데 그 글자가 유기(留記)에 나오는 신지신획으로 곡일(曲一)과 직이(直二)란 ㄱ ㄴ ㄷ ㄹ 과 같은 직각이 이 된 글자다.



1) 신지유기
*.....유기(留記)에 이르되 신획(神劃)이 일찍이 태백산의 푸른 바위의 벽에 있는데 그 모양이 ‘ㄱ’ 자 등 과 같으니 세상 사람들이 이르기를 신지선인이 전한바라. 하며 혹자는 ‘이것이 글자 만듬의 시초가 된다’ 라고 하는데 즉 그 획은 직일(直一)과 곡이(曲二)의 형상이며 그 의의 는 관리 통제한 형상이 있고 그 형태와 소리 또한 계획된 뜻에서 나온 것 같다.(1)... - (소도경전)
...留記云神劃曾在太白山靑岩之壁其形如 ㄱ世稱神誌仙人所傳也或者以是爲造字之 始則其劃直一曲二之形其義有管制之象其形其聲又似出於計意然者也...(蘇塗經典)
(1) 형태와 소리또한 계획된 뜻에서 나온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천부인ㅇ ㅁ ㅿ] 해설에서 자세히 논의되겠지만 우리말과 글자가 동시에 천부인을 중심으로 계획되어 창제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종이 [훈민정음]의 원래 뜻, 옛 조상의 글자를?본떴다는 字倣古篆을 정인지 등에게 설명하고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를 쓰게 했는데 정인지는 그 말대로 [제자해 서문] 첫 머리에 有天地自然之聲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은즉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 조상은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뜻과 통하게 했고 삼재의 도에 실리게 했으므로 후세에서 능히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라 썻으니 그렇다면 세종이나 정인지도 조상의 말과 글자가 동시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고육지책으로 최만리, 중국 때문에 그 제자해 본문은 중국 易經의 음양오행설로 만들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따라서 세종이 인용한 古人이란 말은 그 신지신획을 말 하는 것으로 박에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학자들은 그 고인의 글자를 한자나 또는 다른 나라 글자를 본받은 것을 알고 있는데 한자에는 ㅇ 과 같은 글자도 없고 세종당시는 물론 당시도 비슷한 글자는 없다.





















아래 좌측은 전자이고 우측은 훈민정음인데 그 글자 모양이 전자는 둥글고 훈민정음은 유기(留記)에 나오듯이 곡일(曲一)과 지이(地二)로 모가 져 있다.





단 그 고전(古篆)소리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대전(大箋), 소전(小箋)을 만들 때나 또는 명 태조 주원장이 몽골군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 글자도 통일 하여 홍무정운을 만들 때 나온 소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는 지금 신지의 신획으로 써진 평양 법수교 아래 있다는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기천문이나 창성 조적서 비만 봐도 알 수 있다([진본 천부경] 신지녹도문에서 해독)







사실 [진본천부경]신지녹도전자(神誌鹿圖篆字)는 사슴 그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만든 글자니 신지녹도전자라 한 것이다. 그러나 창성조석서비(創聖鳥跡書碑)는 새(鳥) 발자국 같아서 조적서라 하는데 정말 신지녹도문 글자체는 새 발자국 같을망정 사슴이나 사슴 발자국과 가 같지는 않다.



창성(創聖) 이라는 창힐(創詰)은 환숫(桓雄)한데서 글자 만드는 것을 배운 사람이고 [창성조적서] 비란 글쓴이가 동시에 출간하는 [진본천부경} 신지녹도문 풀이에 해독해 놓았듯이 한자의 창제과종을 말 하는 게 아니라 환숫이 밝달임금의 밝달나라(첫 조선)을 세우는 과정을 보고 역시 신지녹도문과 같은 글자로 적어놓은 일종의 견문록 이라 중국의 국보가 아니라 우리의 국보이다.

이와 같이 같은 글자를 가지고도 글자 이름이 달라진다는 것은 바로 신지녹도문이 진실 이라는 증거가 된다. 즉 사슴과 비슷하지도 않은 글자를 녹도문 이라 한 것은 신지는 사슴을 보고 만들었으니 녹도문 이라 한 것이 구전되 것이고 그 제자 창힐은 아무리 선생의 글자라도 새 발작 같으니 조석서라 한 것을 보면 안다.
따라서 이 글자들이 녹도전자이니, 조적서이니 말이 달라지는 것은 당시는 한자나 어떤 글자가 없었고 그 후대에서 전해지는 말을 듣고 한자로 표현할 때 진시황의 대전 소전이나, 주원장 시대 신지녹도문이 꼬불꼬불 하니 그저 옛 글자는 모두 전서(篆書)라 하는 줄 알고 전서라 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글쓴이는 세종의 자방고전(字倣古篆)의 箋 자란 신지 유기에 나오는 ㄱ ㄴ ㄷ ... 등으로 보고 이 글에서는 ‘신지녹도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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