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안에
<우리말 대학>
의 신설을 건의합니다.
서정돈 성균관 학원이사장님께 드리는 열린 편지
먼저 새로이 학원재단 성균관의 새 이사장에 선임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큰 책임을 지시고 성균관대학교가 이름대로 우리나라의 대표 최고교육기관이 되도록 큰 힘을 드러내실 것을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기원합니다.
새로 이사장이 되신 분께 이렇게 열린 글월의 틀을 빌어 말씀 드리려는 것은 성균관의 발전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성균관의 개혁에 관하여 한 말씀 드리고자 하는 뜻에서입니다. 즉, 성균관대학교에 단과대학의 하나로
<우리말 대학>
을 새로 만들도록 노력해 주십사하는 것입니다.(대학 이름은
<우리글 대학>
,
<우리겨레 대학>
,
<우리 얼 대학>
, 등 여럿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성균관이 해야 할 일, 우리 얼 배움터
성균관은 아시는 대로 고려시대에 시작된 우리겨레가 만든 최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격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國子監으로 출발해서 成均監, 成均館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조선조 1398년에 成均館이란 이름으로 제도화되고 이름값을 하는 관이 관리하는 최고 교육기관으로 되었습니다. 일제침략으로 기능을 못하게 되었다가(1910년) 광복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최고 고등교육기관이 되는 것을 목표로 서양식 종합대학교인 성균관대학교로 발전적으로 재탄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되려면 대한민국의 최고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재구성 되었어야 하는데 해방공간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에서 정치인의 무지몽매로 인하여 일본의 조선통치를 위한 최고교육기관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의 정신을 이어받는 국립서울대학교에 그 자리를 빼앗기고 성균관은 국립의 자리를 잃고 사립대학교로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으로 치면 하나뿐인 국립대학교였던 성균관은 庚戌國恥로 하루아침에 經學院이란 사설 기관으로 전락하여 유교경전을 가르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반면 조선총독부는 조선통치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현대 서구식 고등교육기관인 京城帝國大學을 만들어 한반도의 최고학부로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독립을 이루는 과정에서 당시 한반도의 반쪽을 통치하던 미군정청과 독립정부를 준비하던 우리의 지도자들은 고등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립대학교 설립을 위한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처음에 京城大學校였고 1948년 대한민국이 탄생했을 때는 國立서울大學校가 되었습니다.
그 경성대학교의 위치와 시설과 구성원이 문제였습니다. 급한 대로 학교 시설은 경성제국대학을 접수해서 썼습니다. 구성원은 그 당시 서양식 현대 대학교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은 과거 경성제국대학에서 공부하고 종사했던 사람과 일본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의 전신은 경성제국대학”이라는 말과 “경성제국대학이 국립서울대학교의 전신”이라는 말이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대한민국의 전신은 조선총독부요, 조선총독부가 대한민국의 전신이다“라고 해도 무리가 없게 됩니다. 국립서울대학교동창회명부에 경성제국대학졸업생이 버젓이 올라 있는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고위 정책입안자들은 조선조에 최고 국립교육기관인, 현대로 치면 최고학부인 고등교육기관으로 성균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그것이 바로 현대의 대학교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성균관은 고리타분한 저급의 교육기관이고 대학교만이 고급 교육기관이라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생각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당연히 성균관은 성균관이라는 이름과 민족문화의 창달, 나라의 최고 지도자 양성이라는 이념을 이어 받으면서 교육방법은 현대식으로 개편하는 방법으로 국립최고교육기관이 되었어야 합니다. “성균관 나라 으뜸 배움터”라는 교육기관이 생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성균관은 진정한 우리 겨레의 얼은 무엇인가를 밝혀내고, 그 얼이 실린 교육내용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우리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된 다음에는 성균관이라는 이름도 우리 얼이 담긴 순 우리말로 된 이름으로 바뀌어도 될 것입니다.
성균관은 비록 지금 사립대학입니다만 정신만은 과거의 성균관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겨레의 으뜸 학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말
대학>,
<우리글 대학>
,
<우리얼 대학>
, 어떤 이름이라도 좋으니 우리 겨레와 우리 얼과 우리말과 우리글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보급하여 진정한 우리 겨레를 찾기 위한 교육기관을 성균관 대학에 만들기를 건의하는 것입니다
<2>
왜 우리말(찾기)인가
돌이켜 봅니다. 성균관이 정식 국가기관으로 정해진 1398년에 우리는 말은 있어도 글이 없었습니다. 한자를 빌려 쓰면서 한자로 된 말들을 우리말인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고 배운 중국의 모든 고전을 우리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성균관에서 배우는 것들은 거의 전부가 중국의 경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균관은 유학(儒學)을 주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조 최고교육기관이 되던 1398년에는 우리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후에는 우리글이 생겼습니다. 그 때부터 성균관은 중국문명에서 온 우리의 학문을 물론 연구해야겠지만 동시에 순수한 우리의 문명의 뿌리를 찾는 일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생각은 말과 글로서 합니다. 말과 글이 없이 높은 문명은 이루지 못합니다.
인류의 언어발전과정을 잠시 돌아봅니다. 사람이 쓰는 말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선 “아프다”, “재미있다”, “배고프다”, “슬프다“, ”어머니“, ”할아버지“, 등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가장 단순한 말들이 먼저 생겨났습니다. 희랍문명의 발달단계로 보면 ”Pathos'적 삶의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인간이 다음 단계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Mythos적 세계입니다. 신화가 생기고 이야기와 시가들이 생겨납니다. 이때에는 위에 열거한 단순한 낱말이나 원초적 언어만으로는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노래, 서정시, 서사시 따위가 발달합니다. 이때의 언어를 Mythos적 언어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복잡한 문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좀 더 고차원의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발전합니다. 추상적인 생각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머리로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고급의 언어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논리적 언어가 발달합니다. ”Logos'입니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를 만나서 가정을 꾸렸는지를 이야기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주어도 못 알아듣습니다. 세 살짜리는 파토스적인 언어, 초등 3년생은 미토스적인 말밖에 알아듣지 못합니다. 문명사회를 이끌어 가는 언어는 로고스입니다. 고급문화는 로고스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말과 글의 발전과정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글이 없을 때부터 우리말은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글을 만들기 훨씬 전에 중국(漢族)의 문자인 한문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고조선 중기 이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림잡아 서기전 10세기경쯤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문명발달의 과정을 보면 인간의 정신활동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원시시대의 정신생활이란 아주 단순했습니다. 즉 Pathos의 세계지요. 이때의 말은 언어발달로 보면 파토스적 말로 살다가 미토스적 말로 발전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희랍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에 미토스적 언어가 발달하고 기원전 5세기경에 로고스적 언어가 발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고스의 세계는 철학이 시작한 때로 보면 될 것입니다. 중국에서 로고스적 언어로 기록되는 많은 문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춘추전국시대로 알고 있습니다. 희랍에서 로고스의 세계(합리적, 논리적, 형이상학적 사고의 세계)가 꽃핀 때가 Sokrates(B.C. 469~399)가 활동한 시기로 보고 동양에서 로고스적인 문화가 각종 경전이 나타나고, 孔子(B.C. 552~ 479)가 대표하는 諸子百家라고 칭하는 여러 사상가들이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라고 볼 때 인류문명에서 BC500년을 전후한 시기가 문명사, 특히 지성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때쯤이면 우리말과 우리글로 로고스적인 정신활동을 시작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때 우리는 기록상으로 민족의 문명발달과 지성사에 올릴 만한 어떤 사건이나 인물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우리는 고조선이 쇠퇴하고 강력한 중국세력의 침투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미 우리는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차용해서 뜻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기원 원년경을 중심으로 삼국이 성립함으로서 이제 우리의 역사와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남의 말을 우리말인양 쓰고 있었습니다. 관직의 이름도, 각종 고차원적인 생각들도 한자로 했습니다.
말과 글의 식민 상태가 시작된 것입니다.
신라에서는 우리가 한자로 우리 뜻을 나타내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고, 동시에 세종대왕이 말한 그대로 “나라 말쌈이 뒹국에 달아 백성들이 ㆍㆍㆍㆍㆍㆍㆍㆍ”의 현실을 깨닫고 우선 이두(吏讀)라는 방법으로 우리글을 써 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언어의 식민 상태는 겉으로는 한글이 만들어진 1446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2천년 이상 중국말로 우리 뜻을 나타냈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문명은 중국의 아류밖에 못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문명의 노예로 그들의 틀로 사상을 전개하던 우리의 지식인들은 한글을 써서 중국의 식민 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를 만들려는 사람을 지식인 취급을 안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언어에서 중국의 식민 상태에 있었음을 모르고 우리는 중화문화권에 있었으므로 한문을 우리말로 아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쓰는 것은 민족문화를 지키는 것이고 한자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라고 가끔 혼동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모두 영어에 목을 매는가? 이는 결국 세계화와 보편성의 문제다. 조선시대는 한자 유교문화권에서 살던 시대로 한자는 당대의 세계문자였다.] (정옥자서울대명예교수-한국사, 조선일보, 2011-02-11)
한자가 당대에 동양문화를 지배하는 문자였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글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글전용론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늦어도 중학생 때부터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행스럽게도 우리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말인 한자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찾아야 합니다.
앞에서 쓴 것 같이 우리는 우리말로 로고스적인 문명을 발전시켜야 할 때인 기원전 5세기부터 이미 한자로 우리의 뜻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말로는 로고스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책방에 가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동화책이나, 소설,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에 관한 책에는 비교적 우리말이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인문학 책, 전문 서적을 보면 한자단어가 거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말만으로는 철학책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화시대에 우리말 찾기를 주장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이라고 지적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1980년대초,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준비할 때에 두 국제적 체육대회의 정신문화적인 성격을 정하고 추진하는 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위원들이 중간보고서 비슷하게 준비된 결론이 있는데
<아시아는 서울로(86), 서울은 세계로(88)>
라는 것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중간보고서는 공개되지 않고 그 위원들은 그 일에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참 좋은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를 이야기 하지만 자기정체성을 갖지 못한 세계화는 진정한 세계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부터 가르치는 일에 절대 반대합니다. 지금 자료를 찾을 수 없지만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어떤 분이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우리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 마치 우리말은 잘 못해도 영어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풍조가 큰 소리를 치고 있는데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굳건히 이룬 다음에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진정한 세계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라가 바로 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꾸후(幕府)시대에나 메이지(明治)유신 후에나 일본은 서구의 앞선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일본정신을 해칠 수 있는 서양문화는 골라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은 안 받아들이고 서양 문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언어와 함께 중국의 식민상태에 있던 것이 지금은 서양의 정신적 식민지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운 아들은 아버지와만 바둑을 두어서는 아버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버지 바둑과 다른 자기바둑을 만든 다음에야 아버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고 그것을 기둥삼아 남의 것을 수용해야 남보다 앞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찾아내야만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굳건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말 찾기를 우리가 세계에서 앞서가는 민족이 되는 첫 번째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우리말 찾기를 맨 먼저 꺼낸 것입니다. 우리말로 각종 이론을 세울 수 있어야 진정한 우리의 철학을 만들 수 있고 그것으로 당당하게 세계와 겨루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 내 놓을 어떤 철학도, 어떤 기술도 우리 것이 없습니다.
우리말을 찾는 교육을 하고 연구하는 곳을 성균관대학교 안에 만드는 것을 그래서 건의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말 찾기는 빨라도 50년, 제 생각으로는 100년이상 꾸준히 노력해야 겨우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 방법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간단히 하나의 예만 들겠습니다.
우리는 과학(科學)이란 말이 중국이 옛날부터 써온 말인지, 근래에 중국 사람들이 만든 말인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인데 그냥 쓰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철학(哲學)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옛날에 과학과 철학에 어울리는 우리말이 있었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만일 없다면 지금이라도 과학이나 철학을 뜻하는 우리말을 만들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에 대해서 이렇게 순 우리말을 찾거나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을 만들기를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로마자로 된 어떤 새로운 사상이나 문물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의 말 그대로 쓰기를 잘하는데 이것도 힘들더라도 우리말로 고쳐 쓰기를 해야 합니다.
글과 말을 찾으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남과 다른, 남보다 우수한, 문화를 가지게 되고“자 보아라! 여기 한겨레가(한민족) 있다.”고 소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 힘으로 꿀리지 않고 세계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건의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3>
문제점
우선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엄청난 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런 일이 100년이 걸리던 200년이 걸리던 우리 겨레가 어느 다른 나라나 겨레들과 어깨를 겨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은 어쩌면 우리 민족을 개조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4>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직책을 맡으셔서 힘드신 분에게 너무 무리한 신경을 쓰시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성균관이 아니면 할 곳이 없고 이사장님의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되어 무례한 글월을 올립니다.
김이영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의과대학 정신과전공, 2005년2월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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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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