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살던 곳이며 환숫(桓雄)의 고향인 바이칼 호 부근의 부라이트족, 나나이족, 울치족은 지금도 그 안방이나 응접실등 마루에 소코뚜레를 걸어놓고 액운이 물러가고 평안과 다산(多産)이 되기를 바라고 출가한 자녀에게도 그 코뚜레를 선물 하는데 그 이유는 모르는 체 그저 전통적으로 그으니 그런다 한다.
우리도 지금 시골이나 나이가 50세만 되도 그런 풍속이 있었다는 것을 알며 야후, 다움, 네이버 등에도 소코뚜레만 치면 그런 민속 상품을 파는 곳이 많은데 돈 만원 안팎으로 살 수 있고 자녀에게 선물도 한단다.
그러나 그 코뚜레가 왜 액운이 물러가고 평안과 다산을 의미하는 것은 모르는데 전통이 그러니 그런 줄만 알 뿐이며 여기에 대한 학자 설명은 '소는 힘이 센데 그 힘센 소를 제어 하 는 것이 바로 코뚜레이니 그래서 걸어 놓는다' 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말이 되지 않는다. 즉 안전은 될지 모르나 액운이 물러가고 다산을 의미 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의 정확한 이유를 알기 위헤서는 지금 시중 유명서점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하나 둘 셋...열 의 뜻 [진본천부경]아홉에서 인용한다.
하느님이 새 나라를 세우려는 환숫께 그 백성들이 잘 살기위한 홍익인간의 교훈을 말씀으로 내려 주셨는데(ㅁ傳之書) 그것은 하나 둘 셋 ...열 이다. 이중 아홉은 우리 뿌리말 이나 금문, 그리고 경북 명마산 석각본이나 최치원 81자 하나 둘 셋...열의 예찬시중 일적십거무귀화삼(一積十鉅無?化三)만 보더라도 씨족의 울타리다. 즉 최치원은 보통 해석처럼 '한 을 쌓아 열로 커진다'라고 하고 싶었다면 巨 자만 써도 된다. 그러나 최치원은 우리 숫자 '열' 이 한자 十으로는 연다는 뜻이 통하지 않으니 이두로 썻고 또 한자란 그 변이 그 뜻을 말해주므로 ?변이 붙으면 반듯이 물 과 관계가 있고 木 변이 붙으면 나무와 관계가 있다. 따라서 큰 옥편에는 鉅를 구거야(鉤鉅也)라 했는데 鉤鉅란 金변이 붙어있으모 낚시 미늘이며 천조망 같은 가시 울타리 이고 통감 한기만 보더라도 울타리다.
이 하나 둘 셋 ...열의 뜻은 간단히 말하면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 하나 들 셋...열의 풀이를 보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뿌리말, 금문, 갑골문, 경북 명마산 바위 글씨, 삼국사기, 최치원 81자 여섯가지 증거로 풀이를 해 놓았는데 ...
빛(정신)이 누리(몸)에 둘리워 사내가 되고 계집이 되어 땅 위에서 교합하나니 번성 하는 것이고 사내의 의무는 처자식의 집일 일구는 것이며 계집의 의무는 그 집에서 자식을 잘 키워 씨족의 울타리가 완성되면 근친상간하지 말고 열고 나가라 인데 이 아홉이라는 완성된 씨족의 울타리는 매우 평안하고 자식을 기르기 좋은 장소였다.
즉 수목이 하늘을 가리고 맹수와 다른 씨족이 들끓던 원시 산야에서는 반듯이 씨족의 울타리를 치고 살아야지 밖에 노출 되었다가는 어느 맹수나 어느 다른 씨족이 잡아먹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즉 구약이나 수호지, 남태평양의 피지등 식인종.., 지금도 말레지아 국경의 푸난족만 보더라도 지기 종족이외는 짐승으로 보아 사람을 잡아먹는다.
따라서 우리 하느님이 그 씨족의 울타리가 완성되면 열고 나가 다른 씨족과 동화하란 말은 서로 잡아먹는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 피를 섞어 한 종족이 되라 한 것이고 그래서 환숫은 곰족과 동화, 밝달임금(단군)을 낳고 우리 민족을 세웠던 것이 제 일차 홍익인간이 이 지상에 펼쳐진 것이다.
즉 미국인은 원래있던 인디언을 모조리 살육하고 나라를 세웠지만 환숫은 토족과 동화하여 우리 민족을 세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홉이라는 씨족의 울타리가 정말 있었을까?
다음 사진은 지금 울산 반구대 6 천 년 전 암각화에 U자 형태의 씨족 울타리가 있고 그 안에서 남녀가 얼누(性交)는지 엄마가 아기를 얼루는 그림이 있는데 이는 그 울타리 안은 평안 하다는 뜻 이다. 그러니까 이 씨족의 울타리에는 문이 있었을 것이고 문을 닫으면 코뚜레 같은 것이 된다.
울산 반구대 씨족 울타리 사진
명마산 글씨바위의 업구렁이 그림과 九자 신지녹도문.
경북 명마산 글씨바위의 글자 그림들은 먼저 말 했듯이 고조선이 망하고 신한 유민들이 마한땅 동남쪽 한 쪽을 얻어 신라를 세웠다는 말이 삼국유사 최치원 편에 나오는데 그때 양반들은 다 경주로 가고 풍각쟁이 각설이 남사당 패등 상민들은 물도 별로 없는 명마산 기슭으로 모인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을 잊이 않으려고 북쪽이 병푸어럼 쳐진 바위 아래 석판에 연장도 별 신통치 않았을 흑요석이나 차돌로, 그것도 기간은 2~ 3 백년간 석각 전문가가 아닌, 아무나 와서 그들이 쓰던 글자 금문과 신지녹도문과 가림토로 새겨 놓고 다산과 안녕을 빌었으니 조잡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전문가 와 보고도 신지녹도문등을 해독 할 줄 모르니 아이들 작난 이라하고 돌아 갔다는데 그 글자를 잘 분석해 보면 우리 글자의 발달사가 적혀있는 귀중한 유물이 지금도 비 바람에 마모 되고 있다.
그들이 그린 글자를 일일 히 설명 하려면 시간과 공간이 너무 차지 하므로 그들이 업구렁이를 그린 이유는 업구렁이는 신지녹도문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열 중 아홉이며 남근의 상징물 이므로 아들이나 다산을 빌었기 때문으로 본다.
이 [천부경 한울 소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도 천부경 한울 소리와 비교 해가며 자주 보내질 것인데 이 글은 독자들에 의해 여러 카페에 돌아다닐 것이고 단군 상을 목 치거나 우리 하느님 소리만 나와도 싫어하는 카페가 있을 것이니 계속 읽거나 귄 하고 싶은 분은 천부경.net 치고 들어와 준회원만 되어도 전체 메일을 받아보게 되고 글쓴이 카페 [천부경 한울소리]에는 전에 써진글이 모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