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글전용을 해야만 하는가?
왜 한짜를 일상언어생활에서 추방해야 하는가?
한짜는 일상생활 언어(한시 등 고전에는 예외로 하고라도)에 왜 쓰지 말아야 하는가? 용어를 제대로 못만드는 우리의 지식인의 행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용어를 제대로 못 만드는 한국의 지식인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지식인은 스스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데 자신을 잃어버렸다. 모든 신문이나 서적에 한글전용을 실시하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한짜말들도 차츰 새롭게 표기하는 수단과 방법이 자연히 터득되어 질 것인데 한짜와 로마짜를 곁들어 자기가 식자임을 드러내려고 표기하다 보니 우리말의 한계성에 스스로 의문과 회의를 가지게 되어 버린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용어를 만드느니 차라리 수입에 의존한 용어를 누구보다 빨리 수입하여 써야 권위를 인정받고 자기의 밥그릇을 알차게 챙기는 방법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글을 사랑하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처럼 만들어 놓아도 그게 무슨 말이냐고 코방귀를 뀌니 우리 것이 될 리가 없다. 한때 말본, 움직씨, 그림씨, 토씨 등 우리말 문법을 순수 우리말로 만들어 놓았건만 일부 몰지각한 학자들이 저들만의 파벌을 조성하면서 이러한 용어들을 모두 일본문법의 한짜용어로 바꾸어 놓았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한짜말의 용어나 로마짜의 용어라도 좋다 우리식으로 개발하여 독창적으로 활용하여 쓰면 우리 것이 되련만 그저 일본이나 중국에서 만든 조어를 직수입하여 문장 속에 중국의 한짜와 로마짜를 병행해서 자기를 차별화 하려는 사대주의사상에서 언제 벗어날 것인가?
중국의 인쇄물에는 한짜만 보이고 일본의 그것에는 로마짜는 일체 배제되어 있다. 왜 그런가? 일단 외국에서 들어 온 것은 자기나라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한 철학 때문이다. 일본에는 왜 한자를 저리도 많이 쓰고 있는데 하고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일본말은 발음의 수가 50음에 한정되어 있어서 한짜를 쓰지 않을 수 없으며 한짜를 사용한다고 하나 우리 선조들이 쓰다가 불편하다고 버린 이두의 사용법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한짜를 통하여 순수한 일본어를 더욱 활성화 시키고 있는 지혜를 짜낸 것이다.
해방후에 지금까지 일본이 순수일본어를 살려가면서 한짜를 쓰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는 그 껍데기인 한짜만을 수입해다가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것이다. 할증료, 버스대절, 광케이블, 춘투, 재테크, 쿨비즈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설령 일본에서 광케이블이라는 용어를 수입했을 때 조금만 노력해서 빛케이블로 바꿨더라면 얼마나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가! 일본에서는 한자로 '광'이라 써놓고 읽을 때는 순수한 일본어로 '히카리'로 읽고 있지 않는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스스로 무슨 용어를 만들면 괜히 어색하고 어줍잖게 보인다. 그래서 거의 모든 용어를 그냥 수입해다가 쓰는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외국용어를 그대로 쓴다고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도 아니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무상으로 얻어 쓰는 것이야말로 훗날에 엄청난 해독이 된다는 것을 우리 지식인들은 아직도 못 깨우치고 있다. 상품은 수입해서 쓰다가 헌것이 되면 버리기나 하겠지만 말은 그렇지가 못하니 문제가 심각하다.
학식이 높을수록 용어를 우리것으로 만드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데도 통채로 수입해다가 국민에게 강요하고 그것에 자기의 사명을 다 한양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은 오염된 외국산물을 수입해다가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파렴치한 수입업자보다도 못된 짓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새롭게 각성해야만 한다. 되도록이면 외국어 나부랭이나 지껄이고 자기만이 터득한 것처럼 어려운 문자를 쓰니, 일상생활의 용어에서부터 전문용어에 이르기까지 언제 우리 것이 되겠는가? 그냥 외제품으로 졸부집의 집치장이나 하고 마는 것이다.
언젠가 선풍을 일으켰던 노자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지식인의 철없는 권위주의에 또 한번 질리고 만다. 그와 같은 강의에 온 나라가 떠들석하다니 언제 한국인은 새로운 용어를 스스로 만들게 되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노자의 철학을 진정으로 국민이 알기 쉽도록 이해하고 생활화해야겠다는 신앙이 있다면 대중 앞에서 무슨 중국어가 필요하고 어려운 한문과 한시의 낭독이 필요하겠는가? 거기에는 한짜와 한문은 사라지고 한글과 우리말의 노래가 흘러내려야 한다. 노자사상을 모두 한글로 번역하고 우리말로 알기쉬운 용어를 개발하는 노력은 왜 안하는가?
구미주에서 노자를 국민에게 소개할 때 어려운 한짜를 써가면서 강의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용어를 그대로 쓰겠는가? 어디까지나 로마짜를 쓰면서 서구화시키는 것이다. 노자는 서구에서 서양말로 사상만 소개되는 것이지 용어들은 자기나라 말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소위 서양말로 철학하기 아니겠는가? 서양처럼 외국말이 필요하다면 되도록 많이 받아들이되 자기화하는 우리나라의 풍토가 너무 너무 아쉽다.
우리의 불교용어를 보라. 원래 불교언어는 싼쓰크리트아닌가? 그런데 사찰이나 불경이나 독경이나 온통 한짜로 도배를 하고 있다. 중국사람 현장이 수십년의 각고의 노력끝에 중국말로 번역해 놓은 것을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무상으로 가져다 쓰다 보니 지금은 얼마나 불편한가!! 우리나라에 문자가 없을 때는 그렇다 치고 지금도 한짜의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에 충실하여 니르바나에 이르기보다는 한짜와 한문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주객이 뒤집혀도 한참 뒤바뀐 것이 아닌가!! 지금도 늦지 않다. 모든 불교 및 유교를 비롯하여 한짜로 쓰여진 우리의 모든 옛 서적을 가능한한 순수 우리말로 고치고 한글전용의 길로 나서야 한다.
서구에서 종교개혁은 언어혁명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성직자들의 권위주의 산물인 라틴어성경을 쉬운 독일어, 영어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일반인 누구나가 성경의 진리를 쉽게 깨우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게 시민혁명으로 이어지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도하지 않았으며, 그런 문짜혁명을 주도한 서구가 오늘날 세계를 지도해나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짜고짜로 한짜를 동이족인 우리민족이 만들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혹자는 동아시아의 공통의 문짜였다고 한 수 더 뜨기도 한다. 또한 한짜만큼 조어를 만드는데 탁월한 문짜는 없다고 막무가내로 한짜 예찬론을 펴기도 한다. 이는 모두 학문상으로도 근거없는 자기들만의 허울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짜는 4성이 있는 관계로 2개의 한짜로 말을 만들었을 때 24개의 단어가 생성될 수 있지만 그 말들을 그대로 우리가 가져다쓰면 무수한 동음이어를 만들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만다. 어차피 우리말과 한짜말과는 문법적으로 생리적으로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수입한 말을 들여다보면 불합리한 용어들이 많다. 처가집, 역전앞, 라인선, 닭도리탕 등은 외국어를 가져다가 자기화하지 못하고 성이 안차니까 거기에 우리말을 더 붙여쓰는 희한한 현상인 것이다. 해방후에 영어가 쏟아지자 깡패(gang + 패), 드럼통(drum + 통), 깡통(can + 통) 등이 생겨났다. 지금도 마구잡이로 탄생되고 있다. 왜 이런가? 외국어를 받아들일 때 우리말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없이 그냥 수입하는데 급급한 현상에서 나타난 지식인들의 병폐에서 오염된 것이다.
외국것을 소개할 때 한국화시키려는 고뇌와 각고의 노력을 기우리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우리세대는 다소 그 혜택을 못 받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자유롭게 한국말로 사고하고 한글은 풍부한 용어와 어휘를 가짐으로써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고 세계어로써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도층의 각성과 사대주의에서 탈출하는 식자층의 겸허한 자기반성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중국과 일본에서 용어를 수입하는 국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도층과 지식인들의 잘못된 용어수입으로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나 외국어에 중독된 환자로 살아야 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