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소리글짜와 완전한 뜻글짜란 이 지구상에 없다.
한짜만을 쓰는 중국도 ‘한어병음자모’란 알파벳을 만들어 완벽한 소리글짜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말이 불어와 더불어 아름다운 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알파벳으로 중국말의 특징인 4성의 성조를 잘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파벳만으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중국어를 뜻글짜로만 인식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짜를 혼용하는 일본도 뜻글짜(기사문짜)만으로 볼 수 없다. 일본도 그들이 만든 알파벳만으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아니, 그들의 카나문짜로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들은 한짜의 음과 훈을 적절히 사용하여 말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또, 일본말은 낱말의 장음과 단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영어도 완전한 소리글짜가 아니다. 낱말자체에 모두 발음기호를 표기하게 되어 있다.
또 어근과 어미가 있어 뜻글의 역할도 만만치 않다. 정말 어려운 외국어이다.
한국말은 어떤가? 우리는 우리가 만든 알파벳만으로 의사소통이 어렵다. 아직도 사람마다, 기관마다 다르게 표기하기 때문이다. 한글만으로도 어렵다. 베이징에서 보듯이 뻬이징, 뻬이찡, 베이찡 등 중구난방이다. 중국집을 쭝국찝이라 하지를 않나? 제대로 한글을 못 읽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요즘은 우리말의 장단음이 사라졌다. 아나운서들도 밤나무, 밤무대와 같이 ‘밤’이 장음인지 단음인지 잊어버린지 오래이다. 전문가들도 한글을 못 읽는 것이다.
한글이야말로 완전한 소리글짜에 가까운데 이 특징을 우리가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 자체가 발음기호 역할까지 겸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중국말, 일본말, 영어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럼 왜 한글을 이렇게 제멋대로 읽게 놔두었는가?
공기가 공짜이니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한글이 너무나 뛰어나서 이를 게을리 한 까닭이다.
한짜와 영어에 찌들어서 모든 교육이 그곳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한글을 사랑한다는 한글학회의 누리집에서조차 공공연히 한짜를 칭송하고
한짜병용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에서 보듯이 한글연구회 뿌리님은 ‘주시경과 그 제자들에서’,
그 제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쓴 글은 한짜병용으로 한글만의 세계에서 한글학회 누리집을 오염시켰다.
또 어려운 한짜말을 서슴없이 한짜병용을 하면서 써내려갔다.
記音文字, 記事文字 , 形態主義, 表意的記寫法, 諺文綴字法......등등.
예를 들어 기음문짜, 기사문짜는 한글만으로 써놓으면 무슨 소린지 모르나
소리글짜, 뜻글짜로 표현하면 금방 알 수 있을 터인데도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려는 의지는 온데간데 없다.
정말 통탄할 일이로다. 필자는 한짜를 보면 정신이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한짜를 모르것도 아니다. 오직 한글을 사랑하기 때문에 딴 문짜가 섞이면 마음이 산란해진다. 그런데 뿌리님은 한글연구회라 자처하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이렃게도 모르고 남만 탓하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초고속정보화시대에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짜 쓰는 버릇이 우리말과 한글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나쁜 숩관이다.
습관은 오랜 기간동안 축척되어 온 것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말도 한글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글만을 사용하는 좋은 습관이 삼천리강토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천년동안.....
----- 아래 --------
주시경(周時經) 스승과 그 제자들.
주시경(周時經) 스승님은 자신의 연구에서, 글자를 소리를 적는 글자[기음문자(記音文字)]와 뜻을 적는 굴자[기사문자(記事文字)]로 나누었으며 소리를 적는 글자[기음문자(記音文字)]가 훨씬 훌륭한 것이니 한자(漢字)대신 국문(國文=한글)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분으로부터 직접 혹은 간접으로 배운 사람들인 최현배, 김윤경, 권덕규, 신명균, 장지영, 정 열모, 이윤재, 이병기 등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면서 한글을 뜻을 적는 글자[기사문자(記事文字)]로 둔갑시켜버렸다.
그러니까 결국 이 사람들은 “한글은 소리를 적는 글자[기음문자(記音文字)]이다”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거역(拒逆)했다는 말이다.
세계 모든 글자가 그렇듯 일본 글자도 뜻을 적는 글자[기사문자(記事文字)]로, 형태주의(形態主義)인 표의적기사법(表意的記寫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은 뜻을 적는 글자가 아니라 소리를 적는 글자이다.
그들은 자신들 스승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소리를 적는 한글[기음문자(記音文字)]을 뜻을 적는 글자[기사문자(記事文字)]로 둔갑시키면서 자신들의 영달(榮達)을 위해서 친일분자(親日分子)로 변신(變身)했던 것이다.
그 결과 참여정부시절 문화체육부장관이 “자장면”은 표기에 대한 측면이고, “짜장면”은 발음에 대한 측면이라는 엉터리 논리로 답변을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은 이들을 가리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지신 조선어학회의 선각자들”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 국채(國債)보다 일본 국채(國債)를 많이 사재기하는 유 장관다운 답변이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우리말과 글을 지킨 것은 그들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이다.
일본은 이 땅에 발을 붙이면서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서 1912년에 이미 ‘보통학교 언문 철자법’을 만들었고, 1921년에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 대요’를 만들었으며, 또다시 1928년에 시작하여 1930년에 새 철자법인 ‘언문 철자법(諺文 綴字法)’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실상 이 ‘언문 철자법(諺文 綴字法)’은 표음적기사법(表音的記寫法) 지지파(支持派) 때문에 완벽한 형태주의를 채택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1930년 새 철자법인 ‘언문 철자법(諺文 綴字法)’이 조선 총독부에서 발표되고 시행에 들어가자 이 철자법(綴字法)을 제정할 때 참여했던 최현배, 권덕규, 신명균, 장지영, 정 열모 등은 불만을 품고 조선어학회로 무대를 옮겨 ‘언문 철자법(諺文 綴字法)’을 바탕으로 자기네들이 주창해온 형태주의 표기법을 더욱 보완한 소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라는 것을 만들었으니 그들이 스승을 매도하고 친일했던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래도 그들을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지신 조선어학회의 선각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스승을 욕보이고 스승의 뜻에 거역하고 일본 앞잡이로 일했던 사람들을 선각자라고 한다면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던지고 순사하신 분들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일제 때 학교에서 조선어과가 없어진 것은 1936년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총독으로 부임하여 민족말살과 황민화(皇民化) 정책을 감행하면서부터이다.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은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제도를 실시하였던 것이므로 적어도 1936년까지는 우리말과 글이 사용되었고 일본이 아동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스승의 뜻에 거역하고 욕보인 죄인들, 그것도 모자라서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람들을 선각자라고 대접해 주는 이 나라 백성들이 어리석고 불쌍하기만 하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총독부에서 ‘언문 철자법(諺文 綴字法)’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은 친일분자로 보아야할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한글 연구회
최 성철

